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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요즘 들어 더욱더 인권이란 단어가 부각되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지고 있다. 영화, 소설등의 많은 문화 컨텐츠가 인권이란 문제를 조명하고 있고 인권에 관한 여러 사회문제들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진정한 인권에 대해 망각 할 때가 있다. 사실 인권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사회이슈 혹은 여러 책들과 영화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많았다. 그만큼 인권은 역동적이고 유동적이다. 또한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해야하는 철학적 주제이기도 하다.


인권의 발명 - 10점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돌베개

"인권이란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왜냐하면 개념정의 뿐아니라 그 자체가 이성만큼이나 감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명성의 요구는 궁금적으로 감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내면을 움직여 확신을 갖게 한다." 린 헌트 <인권의 발명>

 이 처럼 인권은 이성적인것 처럼 보이지만 감성에 의존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선 보편성을 상실하기도 하고 선동적일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은 영화 <언씽커블>, <보이A>, <가타카>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하나의 요소 '불확실성'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불안이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문이 굉장히 비인간적인 행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용납하려 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선 어떤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밝을 수도 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 <언씽커블>은 도시 한복판에 폭탄을 설치한 테러리스트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이야기 이다. 자백을 받아내려는 사람은 크게 2명이 있는데 한명은 경찰로서 고문이나 비인권적 행위를 용납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한명은 전문적인 고문집행자이다.

 고문 집행자로인해 첫 고문이 집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고문이 집행 되는 동안 그것을 목격하는 사람들이 된다. 고문의 처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늘상 있는 일이 아닌 추상적인 의식의 영역이고 고문은 폭력의 온상으로서 지각된다. 우리는 폭력을 무서운 범죄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고 태연하게 그것을 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도 후반부로 치닫게 됨에 따라 변하게 된다. 여전히 폭탄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 테러리스트로 인해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고조되고 고문에 대해 반대 하면서 인간성을 강조하는 여자경찰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게 된다. 또한 관객은 입을 열지 않는 테러리스트를 절대 악으로 느끼고 입을 열지 않는다면 고문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고문집행자는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고문집행자가 화장실에 가서 홀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 역시도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는 한명의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한다. 관객들은 고문집행자의 자기 희생정신에 감동을 하고 테러리스트의 인권에 대해서는 망각해 버린다. 이런 인식은 모든 사람이 느끼진 않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끔 영화는 유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수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선 한사람의 인권은 무참히 짓밝혀도 상관없다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테러는 미래의 생존(안전)에 대해 상당한 위협을 가하고 사람들을 극도의 불안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고문이라는 큰 무기를 꺼내드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는 고문집행자와 살인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미래에 그들의 출현을 어떻게 방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때 그들이 우리 자신임을 항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관용할 수도 그들의 인간성을 빼앗을 수도 없다." 린 헌트 <인권의 발명>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해야 한다. 이것은 엄연한 원칙과 기준이며 타협은 용납 되서는 안 된다. 육체적 고문을 행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행위들은 정당화 될 수도 없다. 어떤 상황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일반적인 명제로 만들어 정당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고문을 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는 행위이고 어떤 논리로도 이를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 - 10점
미셸 푸코 지음/나남출판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의 경우에도 처벌함에 있어서 적어도 하나의 사정만은 존중되어야 한다. 곧 그의 인간성이다.(humanity)" 미셀 푸코, <감시와처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자경찰은 이렇게 외친다.

"We are fucking human beings"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나는 선에 대한 요구치가 높을수록 정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판단이 어려울수록 기본적인 원리와 원칙을 먼저 고려해야한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것은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고 인권의 존중이야 말로 아주 기본적인 삶의 지표라는 것이다.

P.쇼뉴 "생활수준의 일반적인 상승, 부와 재산의 다양화등 이것들이 끼친 영향중에 하나는 안전에 대한 욕구이다." <감시와 처벌>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커져 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해 침해 받는 것을 두려워 하고 혹시 모를 안전의 불확실성에 대해 큰 '불안'을 느낀다.


 영화 "보이A" 는 성인이 된 소년범의 사회적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년은 어릴 때 실수로 한 소녀를 살해하게 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교도소에서 지내다가 복역을 마치고 '잭'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오래도록 단절되었던 진짜 세상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그의 착한 본성을 알고 있던 보호감찰사 테리의 도움으로 새 직장과 친구, 애인까지 생기게 되었지만 그의 석방 소식이 TV에 보도 되면서 과거가 드러나게 된다. 잔혹한 과거 앞에 다정했던 사람들은 차갑게 돌변하게 되고 소년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에 대해 불확실한 요소는 곁에 두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과거의 오류를 통해 미래를 유추하려 하고 이를 통해 불안을 느낀다. 더 나아가선 과거의 범죄 사실이나 잘못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정념, 본능, 비정상, 불구, 부적응 등을 심판한다.

 이런 부분은 경험적으로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범죄자의 정신을 심판하는 일을 행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사진이 공개되고 신상이 까발려지는 것이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사회적 편견은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이런 편견은 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인권을 빼앗는다. 편견 때문에 인권의 상당한 부분이며 만인에게 동일한 가치를 갖는 자유를 빼앗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적어도 결말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보이A에>서는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듯 하다.

그리고 <인권의 발명> <감시와 처벌> 에서는 더 강하게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자유를 빼앗고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인권의 발명 ; 린 헌트(Lynn Hunt)

감시와 처벌 ;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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