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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1337-1453)

원인

1. 14세기 초 영국 국왕은 프랑스 국왕의 봉신으로 가스코뉴, 아키텐 등 비옥한 남 프랑스 영토의 상당 부분 지배.

프랑스는 영국의 축출을 원했다.

 

2. 플랑드르 지역에 대한 이해 관계 충돌

플랑드르는 유럽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로 프랑스 왕의 지배 하에 있었지만, 양모의 최대 공급 국인 영국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

 

3. 카페 왕조 단절 이후 (1328, 샤를 4세) 발루아 왕가가 들어서자(필리프 6세) 카페 왕가와 혈족관계인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왕위 계승권 주장.

영국 왕의 모친이 샤를 4세의 누이

 

전쟁의 경과

영국인구 400만 < 프랑스 인구 1500만

 

영국 승전의 이유

1. 뛰어난 궁수

2. 전쟁이 항상 프랑스 영토에서만 치러짐(영국 병사들 약탈 물 기대)

3. 프랑스의 내분 (부르고뉴의 자치권 주장과 이탈, 영국과 동맹)

 

잔다르크(1412~1431)

1429 년 아직 대관식도 올리지 않은 프랑스의 지배자 샤를 7세를 찾아가 자신이 영국인을 프랑스 땅에서 몰아낼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 받았다고 선언.

샤를 7세는 군대 지휘권을 잔에게 맡김

 

-잔다르크의 활약

1. 프랑스 중부지역을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킴.

오를레앙 전투 승리

2. 랭스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

 

잔의 죽음

1430, 5월, 부르고뉴인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인도

영국은 마녀로 기소하고, 이단 혐의로 심문

1431년 루앙의 시장 광장에서 화형

 

-전쟁의 결과

프랑스 군대 연전 연승

1435, 부르고뉴, 영국과의 동맹에서 이탈

1453, 영국이 차지했던 보르도 함락으로써 전쟁 종식

프랑스 왕권 강화

영국-국내 혼란, 장미 전쟁

랭카스터가(붉은 장미)와 요크가 (흰 장미)

 

- J.미슐레

J. Michelet (1794~1874)

낭만주의 역사가

쟌다르크에 대한 해석

'프랑스의 얼'

애국심과 민족적 이상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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