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천황을 상대로 한 최초의 독립운동 --> 이봉창 의거
조선일보에서는 이봉창의거를 범인이라 표현

-조선일보, 동아일보 초기에는 민족적 정보와 사설을 썻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 -> 언론 통제가 가장 심한 시기

-중일 전쟁이 일어난 후부터 조선일보는 친일 행위를 표현 (조선일보의 사장이 바뀜 - 보석 장수)

-일장기 말소사건 이후 10개월 간 정간 당한 동아일보는 그 이후부터 친일적 표현을 심하게 사용
-> 지원병 축하 글 보도, 왜곡된 보도
(일본의 전쟁자금을 한국인에게 헌금하라 종용하고 친일 기사 보도)
제호 위---> 일장기 (조선일보)

- 일본에 의한 강제 폐간설
"친일행위를 했으면 왜 일본에 의해 폐간 되었겠느냐?" : 조선일보측에서 주장
"지면의 획일화 유사신문 병존의 필요성" ; 매일, 동아, 조선등의 큰 차이가 없다. -->일본입장에서는 똑같은 신문이 3개
"물자절약 차원에서 페간되었다."

- 동아, 조선일보 간부들의 폐간 후 친일 행적
방응모(조선) - 친일 논설을 계속해서 써나갔다. (징병제에 감사한다)
김성수(동아) - 친일 논설을 써갔다. (전쟁 참가 독려, 징병제를 추천), ; 심지어 독립투사로 기록되어있다


-나치에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 프랑스도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2차 대전시 4년간 나치에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프몽드 신문(프랑스 대표 신문, 고급 지성지) - 드골 수상이 설립

1940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 
나치에 의해 허가된 신문만이 발행을 할수 있었다.
르탕은 나치에 동조하여 신문을 발행 (이후 르탕은 친나치 행위로 인해 처벌)
일부 양심적인 언론은 지하 발행을 선택

나치정권이 물러나고 드골정권이 들어났다.
가장먼저 한것은 친나치 언론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이루어 졌다. (나치신문에 글을 쓴 사람은 증거가 남아있다.)
르탕의 폐간 후 르몽드라는 새로운 신문으로 재 탄생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지성지로 재탄생)

- 그렇다면 우리의 언론은 어떠한가?
인정하지 않는 친일 행위 - 증거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는 현실
과거의 진실을 숨기면 현재가 왜곡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