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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이유 - 10점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지음, 유희수 옮김/길
 
 


 중세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 처음페이지를 펴는 순간 써있는 표어와 몽롱한듯한 제목인 몽타이유. 전체적으로는 재미있는 책임에도 처음엔 이 책이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서사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챕터별로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사실의 열거라는 느낌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한마을의 종교, 민속, 결혼, 집, 성생활등 방대하고 다양한 종류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런 서술 방식이 처음엔 지루 할 수도 있겠지만 읽어나갈수록 몽타이유라는 마을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지고 구체화 되어 흡입력있게 이해되는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이 더욱더 특별한건 많이 다뤄지지 않는 농촌사회를 다루고 있다는 것과 지리적 위치의 특수성인 듯 싶다. 우리가 배워왔던 건 도시중심의 역사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알던 중세와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몽타이유라는 마을의 위치가 특수하다고 하여 모든 결과를 특별하게만 보는 것도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몽타이유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이 비교적 적었고 결혼까지 마을사람끼리 하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이런 환경은 그 마을 사람들이 이단으로 빠질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또한 반대로 이런 환경은 카타르파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기에 좋은 환경일 수 있다. 그들의 앞 길에 장애물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카타르파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바와 많이 달랐다. 너무나도 순수한 카타르파라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순수해 보이지는 않았다. 또한 그곳의 카톨릭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종교는 적어도 휼룡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중세관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물음들은 게속 나를 따라다녔다. 과연 이 물음이 몽타이유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이진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는지에 대해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물론 몽타이유가 프랑스를 대표할만한 마을은 아닐 것 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중적인(혹은 민속적인) 성향이 강한 가톨릭 혹은 이단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은 중세를 한쪽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풍성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푸르니에 주교와 작가에 대한 존경심도 들었고 이 책에 대한 부러움도 들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런 종류의 책이 거의 없는 듯 하다. 식민지적 사관과 민족주의적 사관이 난무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몽타이유처럼 농촌의 한 마을을 자세히 표현한 역사서나 자료가 있으면 더욱더 풍성한 역사가 될듯 싶다. 「고구려의 한 농촌마을의 이야기」 생각만 해도 멋지고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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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상상력이 가득한 김영하의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10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7 
사진관 살인사건 / 35 
흡혈귀 / 75 
피뢰침 / 107 
비상구 / 137 
고압선 / 179 
당신의 나무 / 209 
바람이 분다/ 237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 265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분다. 바람이 분다. 다섯 번을 되뇌고 하늘을 본다.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게임을 한다. 게임이 한다. 게임을 한다. 게임과 한다. 게임을 한다.시간이 가지 않는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시간은 가지 않는다.불을 끈다. 이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김영하의 소설 바람이 분다 중에서-

 

 사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들은 “얼마나 원작에 충실하게 했는가?“ 라는 질문에 직면해왔다. 장편소설을 영화와 한 작품들은 사실 많은 부분을 제거하거나 변형을 가해 만드는 것이 대다수이다. (죠제는 제외 단편소설같다가 졸라 잘만듬 하하) 그러다 보면 앞뒤의 상관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바람이 분다는 단편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바람이 분다” 에서는 살을 붙이지는 못할망정 중요한 살들을 제거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래서 영화속에선 조금은 어색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하고 각 캐릭터의 섬세한 심리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1인칭인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화체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서술한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생각을 영상과 소리로 표현하기는 매우 까다로울 것 이다. 물론 나레이션이 많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나레이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을 배제 한다.

 

사실 영화를 본지 오래 되서 그런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이 영화는 나레이션이 많아서 그런지 구체적인 나레이션이 생각나질 않는다. 그래서 인지 비교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런 내 머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본론으로 넘어가면 영화에선 소설에서의 제 1장부터 많은 부분을 보여주지 않았다.

 

1장에선 주인공의 전체적인 성향과 소설의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꿈도 없고 꿈을 위해 뭔가를 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주인공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슬쩍 비켜서 있다. 세상을 방관하며 살던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부딫쳐 버렸다. 그녀는 그가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누군가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에게 없었던 목표를 갖게 해주었다. 또 사람에 대한 감정과 행복감을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들을 영화는 많이 표현해 내지 못했다. 또한 주인공의 과거의 대한 회상이나 감상적인 생각들의 많은 부분을 잘라내 버렸다. 이것은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 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단지 빠른 스토리 진행을 할뿐이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간의 상관관계가 어정쩡하게 되어버렸고 진행의 유연성 마져도 떨어뜨렸다. 그 결과 마지막장에 있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이해하고 그렇게 되려 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영화는 소설 보다 표현에 있어서 제한이 따른다. 소설의 다양한 서술체를 영화는 모두 옮겨 내지 못한다. 영화 “바람이 분다“라는 작품도 소설의 독특한 색체를 지닌 문장을 영화로 표현해 내지 못했다. 특히 에필로그에 나오는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분다. 바람이 분다. 다섯 번을 되뇌고......(생략)이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이런 독특한 문체는 영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또한 마지막장에 나오는 “사방이 꽉 막힌 이 지하실로 어디에서 이렇게도 바람이 불러오는 걸까. (생략)바람이 분다. 분다” 라는 표현은 영상으로는 느끼기 힘든 소설만의 감각적인 느낌이다. 또한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영화가 이러한 감각적인 표현들을 영화는 잘 표현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카메라를 이용해 바람이 부는 것을 표현하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 “바람이 분다” 는 소설 “바람이 분다” 라는 작품은 다소 소설의 중요한 요소를 놓쳤다. 또한 소설만의 촉감을 살려내지 못하였다. 그로인해 영화는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각색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추가로 배우들의 캐스팅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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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읽으면서 노트에 써놨던 제대로 정리 안 된 글들의 나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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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화 -- 인문학, 자연과학 --분리된 지식구조

 

 

                    불확실성에 관한 진단기술의 발달

과학주의에 대해 -------------------->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는것 ------사회체계(인간또한)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영역 

 

       ↑ 과학적 확실성의 의존

 

확실성의 호소----과거의 경우 종교적인 안정 (확실성에 대한 안정 but 원천의 고갈)

 

▶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자기성찰적 지식활동----선택적지식의대한 성찰(불확실에서 선택을 피할 수 없다)---> 분과의 경계를 허문다

 

 

불확실성의 방법론적 로드맵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참. 타당한 해석을 하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확실하게!! 평가할수 있는 해석자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점

과학 : 복잡성의 연구 -> 단순화

 

만약 주기적 또는 비주기적 현상에 대해 다음의 주기의 사람들의 불안 ---> 수식화 단순화로 안심.

 

인문학은 이론적인 완벽함의 공식화의 우아함보다 예술에서의 우아함에 관심

그러나 좋음의 가치가 보편적인 지식활동 외적인 (바깥의) 기준으로 측정 가능한 것인지

오늘의 Text 와 내일의 Text는 다르다 (인문학적 가정)

 

자연---과학 인간의 태도

과학과 지배욕사이의 불가분의 연계에 관한 생각. (강이 인간에게 봉사하게끔 되어있다는 자세, 강---수력발전)

 

"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을 환멸적인 세계의 이방인으로 전락시키는 과학과 반 과학적이고 비 합리적인 항의들 사이에서 합리성에 한계점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전과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근본적인 양상들을 다루는데 무능력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날 과학은 양적인 세계를 넘어 질적인 따라서 생성의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or 그래야 한다.

 

"자연의 복잡성은 오직 피상적일 뿐이며 각각의 말(체스비유)은 간단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 문제점은 논란이 많겠지만 일반적인 성질을 지닌 몇마디만 하면 과학의 발전이 어떤 사람에게는 이성의 승리라고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연이 로봇과 같이 어리석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발견하는 환멸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상태다" - 데이비드 흄 <<인성론>>-

 

→ 진단기술과 (혹은 정상,비정상) 평등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인가??

-역사적 관점

과거 : 불평등 -> 당연하거나 고칠 수 없는것

현 : 평등 (출생에따른 특권의 폐지) (직업선택의 자유)

미래 (진단기술) : 불평등의 내포 (태어나는 시점에 대해 동등하다 느껴지지만 그러하지 않은)

 

 

삶과 죽음의 경계, 정상 비정상의 경계 ---------> 불확실성 -------> 대응

무엇이 더 나은 인간이게 하는가?

어떤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인가?

확실성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무엇이 더 인간적이게 하는가?

(구체적인 방법론적인 예시를 들자면) 20대의 자살은 (사망률1위 또는 2위) 그냥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개인적인 측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체계에 기인한 것이고 그것에 관련된 사람들과(사회지배계층) 죽으로 몰아갔던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한다. 라는 관점으 어떠한가?

 

 

◆불확실성 --> 불안으로서의 해석

우리의 요구와 세상의 불확시한 조건 사이의 불균형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술은 "삶의 비평"

소설, 시, 희곡, 회화, 영화등 예술은 재미있게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 우리에게 우리의 조건을 설명해 주는 매체 역할을한다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교정

현실 ---> 예술 ----> 더 나은 삶

 

Input

-----> 진단기술 -----> 결과  -------->  긍정적 측면

                                           ↘

                                               ----->  부정적 측면

 

 

Input

-----> 불확실성  -----> 

                       <------ 불안  -------->  긍정적 측면

                                           ↘

                                               ----->  부정적 측면

 

감정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 우리를 건강과 미덕으로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방종, 분노, 자멸로 몰고갈수도 있다.

이성을 이용하여 적절한 목표로 이끌어 보자.

 

죽음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 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삶                                             죽음(삶의 유한성)

 

사회의 가치에 따른 삶                                      모든게 무의미            ------> 해답 : 종교적, ????, ????,?????

야망,권력에 대한 집착

선망 호색, 오만, 복수, 분노 존중

 

조건부 사랑

지위가 유지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

나   ↔  타인

      관계의 에너지 (집중해야 할 이유)

 

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려 하는가.(불가피성)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연관시키는 방식들에 대해 의문을 품자.

 

과학의 확실성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어떻게 형성 되었는가

 

『사회적으로 구성된것의 존재와 가치는 논의의 대상이 될수 있으며 이것은 급진적으로 변환 될 수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교정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의 정체가 정치적인 문제이다.』

 

생물학적 존재 --------> 사회적인 존재

                  진단기술

 

예컨대 어떤 사람이 진단기술로 인해 비정상으로 판정, 분류된다면, 이러한 분류는 불가피 하게도 그들의 행동양식, 생활양식과 스스로에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참고 문헌


      
 
 
 
 
 
 
 


모두 다 추천도서들이다. (특히나 알랭드 보통의 불안은 읽기 부담스럽지도 않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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